책소개. 서평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Jimam 2021. 7. 13. 11:14

 

● 인류와 함께한 식물 문화 이야기
- 식물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 책은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식물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튤립부터 2억 7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수로부인의 진달래, 마고여신의 복숭아나무, 유화부인의 버드나무, 심청의 연꽃처럼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담겨있는 식물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는 누명을 쓰게 된 사과나무와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서 생겨난 양귀비, 게르만 족에게 거의 유일한 나무로 추앙받았던 마가목 등 서구문화권에서 주목 받았던 식물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인류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신화와 예술 작품, 이를 테면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삼국유사와 심청전, 보티첼리와 푸생의 그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하는 여러 식물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의 원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아니 식물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 작전의 명수인 식물들의 모험담!
- 튤립은 ‘미모’로, 주방식물들은 ‘쓸모’로
감자, 토마토, 후추, 옥수수, 커피는 식품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간혹 잊고 사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분명 식물이다. 그것도 보통 식물이 아니다. 인디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옥수수의 신화는 신기할 만큼 성경 속 이야기와 닮아 있고, 후추는 타이탄들의 치열한 전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심지어 인디언들이 몰살당해 미대륙이 텅 비자 다시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감자의 신’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감자의 신이 유럽의 감자를 썩게 해서 굶주린 사람들을 미대륙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는 감자썩음병이 창궐해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아일랜드 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이처럼 비주얼이 출중하지 않은 주방식물들이 지구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쓸모’를 내세웠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솔깃하다.
그런가하면 ‘미모’를 앞세운 튤립은 네덜란드에 튤립 투기 열풍을 불러왔다. 마치 우리가 주거의 목적의 아니라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고 그것을 되팔고 되팔아서 엄청난 잉여가치를 형성했던 것처럼, 구근 하나 당 단 두 개의 새 구근만을 만드는 튤립의 특성이 결합되어 희귀한 튤립 구근을 되팔고 되파는 투기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 국제공항에서 이런 튤립을 포함해, 아도니스 정원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을 바라보며 시작된 저자의 식물... 단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해리포터의 마법의 세계로까지 나아간다.

● 신화와 예술 작품을 넘나드는 식물 오디세이
- 그리스 신화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거쳐 해리포터의 마법의 세계까지
게르만, 켈트 족의 후예들과 3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저자는 지나치리만큼 열정적인 그들의 식물에 대한 애정을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에서부터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후 식물과 인류 문화의 연관성을 좇는 저자의 시선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메소포타미나의 ‘길가메시 서사시’,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푸생의 ‘플로라의 왕국’, 보티첼리의 ‘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서왕모가 등장하는 ‘산해경’, 인디언의 전설을 지나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오랜 객지생활에서 비롯된 우리 것에 대한 갈증이 바리데기와 도화녀, 수로부인, 유화부인 그리고 심청전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과 사람들을 치유하는 식물의 힘!
- 심청이 물에 빠져야만 했던 이유는?
저자는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유화부인 이야기가 웨일즈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리드웬 여신의 이야기와 교묘하게 겹치고, 헌화가와 함께 전해지는 수로부인 설화에서는 지중해의 플로라 여신이 떠오른다며,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태초에 물과 연꽃만이 있었다는 이집트와 인도의 창조신화 또한 놀랍도록 닮아있고, 연꽃에서 솟아오르는 우리의 심청전 또한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지적한다.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로부인의 헌화가와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새롭고 흥미롭다. 특히 심청이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까닭을 연화화생이 아니라 치유와 위로를 담당했던 신의 역할, 자연의 역할에서 찾으며, 인류를 보살펴온 식물의 넉넉한 품을 강조하는 저자의 분석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